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핌 베어벡 (문단 편집) == 기타 == 대한민국 국대 전임 감독인 [[조 본프레레]]와 [[딕 아드보카트]]가 각각 조봉래와 아동복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것처럼 이 감독도 한국화된 별명이 존재했는데 '''[[곰]][[가방]]'''이라고 한다. 곰(베어)+가방(백)의 합성어인데, [[본인]]도 이 [[별명]]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다소 지나칠 정도로 [[유럽]]파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여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에도 유럽파의 컨디션을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자주 [[유럽]]으로 출장을 나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며, 호주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에는 [[K리그]] 등 아시아 상위 리그로 이적하는 호주 선수들에게 "비록 하부 리그라도 유럽을 가는 것이 더 낫다"라며 선수들의 유럽 이적을 적극 권장하기도 했다. 단, [[호주]]는 [[영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의 후손들이 주축이 되는 국가로, 인종적, 언어적, 문화적으로 [[유럽]]과 관련이 깊기 때문에 호주 선수들 입장에서는 [[EPL]]이나 EPL의 하위 리그에 진출하는 게 언어적 측면에서도 [[외국어]]를 따로 배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더 수월하고 다른 아시아 상위 리그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더 나은 측면이 있다.[* 마찬가지로 호주 [[축구선수]]들이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 리그로 진출하지 않는다면 대신 메이저 리그 사커에 진출하더라도 다른 아시아 상위 리그로 진출하는 것보다 더 적응면에서 수월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2002년 코치 때와 2006년 감독 때를 비교하면 [[탈모]]가 진행되는 게 확연했다. 그래서 다소 인상이 달라보인다는 평도 있었다. 국가대표 차출 문제 등으로 국내 지도자들에게는 반감을 샀는지 [[K리그]] 구단 전부 담합해서 올림픽 대표 차출을 거부한 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2007년]] [[1월]]에 있었던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고 출전하기로 했던 카타르 대회는 최종적으로 불참하게 되었다. 대신 베어백은 이 무렵에 있었던 [[아라비안 걸프컵]]을 관전하면서 같은 해 [[여름]]에 있을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을 미리 대비하였고, 동년 [[2월]]에 대신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그리스]]와 친선경기를 치렀다.]. 사실 이는 국내 지도자들의 외국인 지도자에 대한 일종의 텃세이기도 한데, 히딩크 감독이 부진할 때도 대부분이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어도 세계적인 명장이라 명성도 높고 인맥도 좋은데다가 축구협회에서 강력히 지지해 주는 탓에 그런 공격을 지속하기가 힘들었고[* 오해가 있긴 했지만, 2002 월드컵 이후인 2003년, [[김호곤]]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할 때 네덜란드 전지훈련에서 히딩크 감독에게 받은 서운한 감정을 표현했던 일이 있었다.] 게다가 월드컵에서 환상적인 성적을 거두는 바람에 직접적인 비판을 꺼내지 못하게 되었다. [[움베르투 코엘류]]는 선수 시절과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 시절 경력 자체도 나쁘지 않고 사람 자체가 부드러운 사람이라 처음엔 대놓고 비판을 못했지만 [[오만 쇼크]]가 일어나자 곧 강한 비판을 했고 대표팀 내부에서도 국내 코치들과도 불화가 있었다. 그 다음인 [[조 본프레레]]는 비주류인데다가 아예 언론 자체랑도 사이가 안좋았으니 국내 지도자들이 처음부터 그를 좋게 볼 리가 없었다. 아드보카트는 히딩크만큼은 아니어도 그 다음 수준 되는 커리어를 가진 탓에 역시 인맥이 좋았고 언론플레이에 능해 국내 지도자들이 대놓고 비판을 못했다. 또한 월드컵을 불과 몇달 남지 않은 상태에서 선임되어 임기가 짧았으며, 평가전에서 눈에 띌만한 패배 또는 약체와의 무재배가 없었던 까닭에, 월드컵을 제외하고 언론의 구설수에 오를 기회 자체가 없었다고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베어벡은 감독 커리어 자체는 그저 그런 수준이었기에 국내 지도자들이 상대적으로 만만하게 보고 거리낌없이 공격적으로 반대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었다. 히딩크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기 힘든 대신 그는 히딩크의 제자처럼 인식이 되어 더욱 그런 분위기였다. 엄밀히 말하면 K리그 구단들이 축구협회의 국가대표 선수 차출 문제 때문에 계속 참고 참다가 마침내 베어벡 때 폭발한 거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AFC 아시안컵|아시안컵]]이 끝나고 베어벡이 사퇴한 후인 2007년 하반기에는 한국 축구 대표팀의 [[A매치]]가 전혀 없었는데, 아마도 K리그 구단들의 선수 차출에 대한 불만을 축구협회가 의식하고 서로 입장을 조율해서 아예 A매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비록 여론의 비판에 물려 자진사임 형태로 한국을 떠나기는 했지만 [[대한축구협회]]와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특히 홍명보와는 종종 가족끼리 만나 식사를 같이 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래서 베어벡이 사망했을 때 축구협회 전무로 있던 홍명보가 엄청 슬퍼했다고 한다. 키가 195cm로 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최장신 감독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